
"여러분, 행복하세요? 지금!"
"... .... ..." "뭐~ 그냥"
"그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두어 친구들이 자신감없이 손을 슬며시 들어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하고 싶으세요?"
"네!"
"그럼, 행복하고 싶은 사람 손을 들어보세요."
여기 저기 손을 들고 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손을 들었다.
"와, 모두들 행복하고는 싶은가봐요. 여기에 있는 친구들 모두가 손을 들은 걸 보니..."
"선생님,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요?"
"누구나 행복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 아닌가요?...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죠."
"그래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한 가지 더 질문할게요?, 여러분이 거의 다 행복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최근에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하거나 마음 속에 떠오른 적이 있나요?"
" ... ... ..."
이렇게 질문하면 반 친구들은 그동안 거의 '행복'이란 단어를 떠오른 적이 없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해 본 지도가 언제 인지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학생들만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간혹 위와 같은 질문을 하면 대부분 같은 반응이다. 모두들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행복'이란 단어는 마음과 생각 속에 담고 있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듯하다. 아니, 행복한 삶을 그토록 갈망하면서도 정작 '행복'이란 단어를 잊고 산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니, 행복하고 싶어하면서 정작 마음속에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나요? 나라면 그만큼 우리 삶에 중요하다면 매일 그 중요한 단어 '행복'이란 단어를 마음 속에 품고 떠올릴거에요."
나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창문너머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면서 내 마음에 '행복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주님, 오늘 하루도 행복을 찾아 누리는 날 되게 하소서." 이런 기도가 나의 일상의 시작이다. 때로 카톡메시지를 들여다 보면서 카카오톡에서 오늘 생일이라고 알려주는 친구들이 있다면, 곧 바로 생일축하의 말을 적어보낸다. 축하메시지에 꼭 빠짐없이 보내는 메시지 중 하나가 바로 "오늘 하루 더 행복하기를 ..."이란 말이다. 이처럼 '행복'이란 말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빠지지 않는 단어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사람들은 파란 토끼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기를 즐긴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 가거나 여행을 갔을 때 꼭 하는 놀이가 바로 네잎클로버를 누가 먼저 찾는지 내기하는 일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네잎클로버를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이 네잎클로바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여 누군가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면 그렇게들 좋아하고 오늘 하루 자신에게 찾아올 행운을 기대하며 기뻐한다.
간혹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네잎클로바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무언가 모르지만 자신 앞에 뜻밖의 행운의 여신이 찾아와 주길 은근히 바란다. 과거 학창시절 소개팅을 할 때 킹카같은 이성이 내 파트너가 되기를 막연하지만 은근히 그걸 바랐다. 누가 주식으로 대박낳다는 말에 개미때들이 몰려 모니터 앞에서 주식 시세에 몰두하고 있는 마음도 그렇다. 주말이면 로또 판매점 앞에 서성대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타로점이나 오늘의 운세가 단순 심심풀이에서 이제는 자신의 삶의 또 하나의 정형화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삶이 네잎클로버를 찾는 삶의 모습이 아닌가한다. 이처럼 네잎클로버의 뜻이 "행운"이 아니었던가? 어느새부터 우리 일상은 바로 운을 좇고 행운을 바라는 인생으로 바뀌어졌다. 그렇게 살면서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바로 토끼풀밭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세잎클로바의 가치이다. 세잎클로바의 뜻은 우리가 그렇게 갈망하고 있는 '행복'이란 뜻이다.
우리는 그렇게 중요하고 얻고 누리고 싶어하는 행복을 나몰라하며 잊은 채 어쩌다 한 번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다. 무언가 진짜 가져야 할 소중한 것을 잊고 어쩌면 오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을 불확실한 행운을 위해 우리의 중심이 쏠려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함에는 여러 의미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란 단어가 주는 가치를 잊고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에 다시금 새로운 정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토록 바라고 갈망하는 행복이라면 우리의 일상의 시작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내 삶의 시작의 언어로 바꿔보면 어떨까? 아니 시작과 함께 문득문득 내 생각 속에 '행복'이란 단어가 떠오른다면, 그래서 내 삶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마치 세잎클로버의 행복덩어리들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여정을 누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
(2024년 4월 10일 '함지의 행복'이란 티스토리를 시작하면서)